2025년 12월 8일 월요일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글쓴날 : 2025.12.09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 문예출판사 - 예스24 

국민학교 다닐 때 던가? 부모님이 사주신 어린이 동화 100권짜리 전집 중의 한 권인 폭풍의 언덕을 읽었었다. 워낙 예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당연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율", "짜릿" 했던 느낌만이 남아 있다.

이 오래된 책을 최근에 다시 출판해서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 꽂혀 있길래 "고전이면 한번 쯤 더 읽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출 받았다.

물론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은 어린이 용으로 적절한 각색을 해서 출판을 하셨을 거다.

이 책이 꽤 유명한 여러 대학(국내, 국외 포함)에서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하던데... 

나이 들어 다시 읽은 이 책은 누군가에게, 특히 어린이에게 읽어 보라고 전혀 권장하고 싶지 않다.

3대에 걸친 로맨스, 복수 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늘한 살기라도 읽혔는데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세상 찌질이들만 모아 놓은 듯 하다.

최소한 어린이한테 읽히려면 "아름다운 세상", "불굴의 의지", "권선징악" 등의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비열한", "추잡한", "더러운" 사람들의 세상을 보여 준다.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이런 걸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하신 분...  마음 그렇게 쓰시면 안된다. 각색을 잘 하셔서 내가 착하게 살았지 만약 이 내용 그대로 그 어린 나이에 읽었다면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거다.

어떻게 하나같이 두 집안의 할아버지, 아들.딸, 손주들이 치명적일 정도로 이기적에 밉상일 수 있을까... 이 책이 쓰였던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그랬나? 그렇게 미워하다가 말 한마디에 사랑으로 바꾸고 또 죽을 만큼 미워하고... 거기다 막장 이다. 막장은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다. 그래야 드라마지...

등장 인물 중 하나 정도는 이기적이고 밉상일 수 있다. 그런데 하나 같이 이기적이고 밉상이고, 서로 치고 받고 음모를 꾸미고, 거기에 당하고, 또 복수하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 거기다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모든 사람이 대를 이어 진흙탕을 뒹굴다가 마지막에 그나마 쬐금 해피 엔딩인 척 하는데 이것도 읽다 보면 두피 속의 머리 뼈까지 닭살이 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세상 유치한...

그런데 재미는 있다. 드라마의 최고봉은 막장이라는 말이 맞다. 이 동네를 방문한 록우드 씨를 도와주는 "넬라 딘" 이라는 아주머니가 두 집안을 오가면 관찰한 예전 이야기를 아주 찰지게 며칠에 걸쳐 풀어 내신다. 아마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 씨 자신을 이렇게 등장 시키신 듯.

영국이 배경인데 이 쪽 문화는 애 이름을 엄마나 아빠 이름으로 따라 짓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하다. 저 양반 쫌전에 돌아 가셨는데 갑자기 또 등장 하시면 살짝 현기증이 날 때도 있지만 이야기의 라인이 직선적이라 두 집안의 사람들 관계만 파악되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에밀리 브론테 씨가 너무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쓰셨고, 좀 더 무르익도록 다듬기 전에 요절 하시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된듯하다. 이 분이 훌륭한 작가 이신지 모르겠으나 조금 있으면 나이 60인 내가 29살 아가씨가 쓴 글에 무조건적인 존경과 찬사를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슨 비평을 받기도 전에 이 책 출판하고 그 다음 해에 폐병으로 돌아 가셨다.

겁나 퇴폐적인 막장 드라마를 즐긴다면 동화 버전 말고 이 번에 출판된 책을 읽어도 좋다. 퇴폐적 이라는게 무슨 얼레리 꼴레리 하다는 뜻 아니다. 그냥 세상 유치한 공명심, 이기심, 복수심 같은 걸 퇴폐적 이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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