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13일 수요일

만남,충돌...

사람을 만난다. 어느 사회에서건 혼자만 살지 못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경우도 있고 기존에 알던 사람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우리 대부분은 항상 누군가를 미워할 준비를 하고 있는듯 하다.
조그마한 의견의 차이에 분노하면서 따지듯 덤빈다.

설득한 이후에 싸우면 안될까? 왜 사람들은 설득하려는 시도도 하지않고 싸우려고 하는거지?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다른 판단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고 행동한 사람을 일단 미워하고 시작한다.
그래야만했던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도전을 받아 들인쪽은 대화라면 응했겠지만 싸움이 걸리면 또 같이 흥분하고 미워하기 시작한다.

또, 옹졸한 우리들은(혹은 나는) 그런 미움을 가슴속 바위에 새겨두고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받은 은혜는, 배려는 몽땅 잊어 버리고 되갚아줄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미움과 증오는 잊지 않는다.

은혜를 가슴속 바위에 새겨두고 증오를 잊어버리자고 하는 말은 아니다. 난. 원수는 대를 이어서라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 원수를 너무 쉽게 만든다. 그 이유는 상대를 믿지 못하는게 첫번째 이고, 상대는 내가 알고 있는 너무나 당연한 상식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게 두번째 이다.

믿으라고는 강요하지 않겠다. 믿을 필요까지는 없고 그저 "예(禮)"만 보여주면 된다.
그런데 상대가 나보다 모를까? 다른 사람이 나보다 모를까? 내가 세계적인 천재가 아닌한, 내가 일반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내가 미워하는 그 사람도 소속된 사회에 사는한... 그 사람도 나만큼은 알고 나만큼은 상식적이다.

누가 누군가를 미워하면, 더구나 그들이 모두 내 주변의 사람이라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문제가 되어 버린다.

나도 지금까지 많은 사람을 미워해본 사람으로서 이런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되지만...

농협장애? - 그럴줄 알았어...

인터넷이 좋긴 좋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에 살고 있으면서 느리지만 인터넷 덕분에 한국의 소식을 들을 수 있네...

농협에 전산 장애가 났다고 뒤숭숭한가보다. 한때, 그런 IT 개발업무에 몸 담았던 사람이고, 그 바닥 생활 좀 하다보니 아는 사람도 꽤 많이 생겼다. 신문에 "협력업체직원" 때문에 장애가 난 것처럼 떠들더라. 혹...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닐까 걱정도 된다.

시간이 해결해 줄거다. 지금 좀 불편하고 욕좀 먹더라도... 그까짓거 해결하는데 며칠씩이나 걸릴것 같지도 않다.

다만 신기한건... 은행 전산 시스템에서 잠시 일해본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그런식의 장애가 별로 없이 지낼수 있었다는 거지.

지구상에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공학중 가장 어려운게 소프트웨어라고 알고 있다. 다른 모든 공학은 자연 현상을 분석해서 사람의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이지만 소프트웨어라는건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이 정의한 규칙에 의해서 동작한다.

예를들어 집을 짓는데 벽돌을 좀 이쁘지 않게, 짧은 시간에 바쁘게 쌓아도 시멘트의 특성상 일정강도 이상의 내구성이 보증된다. 시멘트 자체가 부실하다면 모를까...
하지만 소프트웨어는... 그 "천연 강도" 라는 것 마져 사람이 작성한 소프트웨어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는거지.
대규모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복잡성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사용하는 인터넷 뱅킹에서 "송금"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스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안다면... 그리고 그 시스템들중 하나만 뻘짓을 해도 제대로 송금처리가 안된다는걸 안다면... 감히 인터넷 뱅킹을 맘놓고 사용하지 못하실거다.

그래도 다행인건 하드웨어들이 튼튼하고, 소프트웨어도 많은 테스트를 거친후 서비스를 공개하기 때문에 대게의 경우 별 탈이 없이 처리된다는거야.

그런데... 그런데... 그 소프트웨어의 개발도, 소프트웨어의 테스트도, 테스트 결과의 검증도 모두 사람이 한다. 벽돌쌓아 놓은것 처럼 망치로 샘플일부 두들겨 본후 "안전" 도장 찍어줄 수준이 아니고 깨알같이 빼곡한 코드를, 결과를 사람이 눈으로 꼼꼼이 확인을 해야 된다는거다.

아침에 출근해서 15시간을 일한 사람이 얼마나 맑은 정신으로 그 내용들을 읽어볼수 있겠니? 하루에 5시간 잠자는 것도 빠듯한 사람이 얼마나 맑은 정신으로 그 복잡한 계를 빈틈없이 설계하고 코드를 만들고 테스트 해볼 수 있겠니?

군대의 초병도 하루에 15시간씩 철책너머로 침투할지 모르는 지역을 노려보지 못하거든. 군인 정신으로 바짝 무장하고 긴장한 사람도 그렇게 하면 실수하기 쉽기 때문에 일정시간 간격으로 교대를 시키거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작성하고, 테스트 한다는게 무슨 시험 공부하듯이 무조건 외우고 많이 풀어보는게 장땡인 그런 직업이 아냐. 사람이 정신 집중하는데 한계가 있어.

그렇게 일하게 만들고도 완벽하길 바래? 실수가 있어도 작은 실수이길 바래? 실수는 실수일 뿐이야. 그게 크고 작고는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정의되는거야.

0.03 곱해야 할걸 0.3 곱한게 이자계산한거면 치명적인데 양계장 닭똥 양 계산하는거면 치명적인거 아니거든... 그냥 잘못된거 알면 고치면되.

그리고 지금의 농협장애는, 그리고 또 어디선가 발생할 다른 은행의 장애는 특정 인물의 잘못이 아냐. 너네들이 운영하는 방식의 잘못이지. 사람이 사람에게 적절한 노동강도하에서 일한다면 그런 실수는 생기지 않아. 근데 너네는 사람을 24시간 전투상황하에서 처럼 일을 하게 만들잖아. 내말이 틀렸니? 그래... 실제 전투상황이라면 그렇게 오랫동안 긴장하면 일해야 겠지... 근데... 몇년씩 그런 전투상황에서 사람이 버틸거 같어? 그나마 전투의 목표는 단순해. 지키기 아님 뺏기야.

너 농협 담당자 솔직히 말해바. 개발자들이 농협의 최악의 사이트라고 하는게 은근 흐믓하고 기쁘지? 윗 사람한테 "나 애덜 돈주면서 본전 이상 뽑았어요" 라고 자랑하고 싶지? 본전이상 뽑는건 잘하는 장사가 아니라는거 너네가 더 잘 알잖아.
이익 안나는 장사 하고 싶니? 개발자도 마찬가지 거든. 자기 지식, 자기 시간 투자해서 돈을 받는 다는건 투자대비 이익이 남기 때문인거야. 너네가 지금까지나마 별 큰 장애 없이 시스템 운영해 온건... 너네가 개발자들 잘 쥐어짜서 일하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고... 대한민국 개발자들의 대부분이 아직은 착하고 순진해서 지금까지 손해보는걸 감수하면서도 일해줬기 때문이야.

더 쓰면 막말 나올거 같아서 이만 줄인다.

2011년 4월 12일 화요일

소설 - 한일전쟁

일본이 요즘 뒤숭숭하다.

넘들은 평생 한번도 겪어 보지못할 지진을 한달새 몇번이나 겪고 핵발전소에서는 방사능을 열심히 뿜어내고 있다.
내가 일본에 살고 있지 않다는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본이라면 지금 어떨까? 아마도... 무척 두려울것 같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랬듯이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대륙으로 진출하고픈 욕구가 강해졌으리라...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한국, 중국, 러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등 아시아가 제일 만만한 대상일거라... 미국이나 아프리카는 워낙 멀어서 쉽게 가진 못하리라.
그리고... 제 땅 내주면서 어서오시요... 하는 나라는 없을게 뻔하니 힘으로 밀고 들어가야 한다.
중국, 러시아... 실제는 모르겠지만 액면에서 만만치 않다. 일본 돈 다 쏟아 부어도 될똥 말똥...

이제 만만한게 한국과 동남 아시아 몇개국이 남는다.
인도네시아는 지진 측면에서 일본이나 별 차이가 없으니 무시, 대충 그 주변국들 무시...

그러다보면 동남아쪽에 건드릴 만한곳이 몇나라 안남는데 거리가 먼지라... 지금의 일본 해군력이 강하다고는 해도 항모한척 없는 일본군대가 원거리 군사작전을 수행하긴 쉽지 않을것 같다.

안타깝지만 한국이 유력한 후보다.

그리고 다시 일본의 입장에서 볼때, 아직 힘이 남아 있을때 뭘해도 해야지 며칠전 지진같은 피해 두번만 더 맞으면 전쟁할 돈도 딸릴것 같다.(내가 너무 과소 평가 했나?).
하여간 전쟁 한다면 죽음을 각오하고 모든걸 쏟아 부을 의지가 있어야 할수 있으므로 할 생각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해야 한다.

요즘 독도로 거는 시비가 부쩍 심해지고, 일본 극우파라고 불리는 단체의 발언이 계속 신경을 거슬린다. 명분없는 전쟁이 없듯이... 명분을 만들기 위한 과정같다.
결국 전쟁을 하지 않게 되어도 별로 손해볼 일이 없으므로 지금같은 시기에 최대한 빨리 합당한 명분을 만들어 두는게 유사시 사용할 카드가 늘어 난다고 생각 하겠지...

만에하나... 전쟁한다면 북한이나 미국이나 중국이나 누구편을 들까?

걱정된다... 제발 소설이길 바란다.

2011년 4월 6일 수요일

와인라벨 모으기

우즈베키스탄에 사는 2년동안 재미있는 취미생활을 한가지 찾았다.

우즈베키스탄,,, 일조량이 충분해서 이곳 포도가 굉장히 달고 맛있다.
포도가 좋다보니 와인도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다.
내가 사먹는 우즈벡 와인들의 가격이 주로 3,000숨 - 6,000숨 사이.

1달러가 현재 2,400숨 정도 이니 와인값이 얼마나 저렴한지 감 잡을수 있을거다.

와인을 마시기만 하는건 재미 없어서 와인 병을 종류별로 한가지씩 모으기 시작했다.
와인병을 모으는것의 문제점은 엄청난 공간을 차지 한다는 거다. 책장에 나란히 세워두면 금방 모든 공간을 차지해 버린다. 처음에 약 30개 정도의 와인병을 모았더니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서 라벨을 모아서 스크랩 하기로 했다.

와인 라벨을 떼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엔 이미 와인라벨 모으는 사람을 위해서 라벨을 깔끔하게 띠어 내는 테이프도 판다고 들었다. 우즈벡에서 그런 도구를 찾기는 어렵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다 찾아낸 가장 확실한 방법은 삶는 거다.
와인병에 물을 채우고 커다란 냄비에도 물을 채워서 병을 가라 앉히고 삶는다.

접착 방식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나지만 대부분은 30분정도 삶으면 깔끔하게 떼어 낼 수 있다. 착한 라벨은 삶는 것 만으로 지 혼자 떨어져서 물에 동동 떠다니고 좀 안 착한 라벨도 삶은 후 면도칼로 살짝 살짝 뒷면을 파고들면 어렵지 않게 떼어 낼 수 있다.

이렇게 모은 와인 라벨이 지금까지 60종이 넘는다. 이 정도면 와인 대국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곳에 오기 전까지 와인을 마셔본 적이 없어서 어떤 와인이 좋은거고 맛있는건지 잘 모른다. 그냥 이곳에서 마셔본 우즈벡 와인이 내가 맛본 와인들의 전부이지만... 내 생각에 우즈벡 와인들 참 맛있다. Sweet Wine, Dry Wine이 있고 Sweet Wine은 또 당도에 따라서 여러 단계로 분리된다. 나 같은 경우 Dry Wine 이나 저당도 Wine을 좋아한다.

와인 라벨을 모으기로 한 다음부터 와인의 맛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못보던 와인이 있으면 무조건 구입하고 가능한 한 빨리 마신후 라벨들을 떼어서 모아둔다. 걔중엔 정말 수집만 아니라면 안쳐다보고 싶은 와인도 있고...

우즈벡 와인을 마시다 보니... 왜 이나라는 와인으로 이탈리아나 프랑스나 칠레 처럼 유명해지지 않았을까 궁금해 졌다. 이렇게 종류가 많다는 건 그만큼 경쟁도 심하다는 이야기 이고, 그러면 품질도 어느정도 확보 되었을듯 한데...

내 생각에 이 나라에 바다가 없다는게 치명적인 약점 같다. 와인팔아서 얼마나 남길지 모르겠지만 그 와인들 비행기로 실어 나른다면 별로 장사가 될것 같지 않다. 또 주변 나라들도 우즈벡만큼 일조량이 좋아서 잘은 모르지만 나름의 포도와 와인이 발달했을 것 같다.

정말 운하가 필요한건 이 나라다. 이란에서 시작해서 투르크메니스탄 거쳐서 우즈베키스탄까지 연결되는 운하가 있다면 이 나라의 경쟁력도 더 좋아질텐데... 그럼 나같은 사람 한국에 돌아 가서도 우즈벡의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즐길 수 있을텐데...

이제 한국에 돌아가면 이곳 만큼 와인을 즐길수는 없겠지...

재미있는 비교 "만들어진 신" - "신의 언어"

최근에 두권의 책을 읽었다.

꼭 비교해 보고자 읽은 책은 아니었는데 읽다 보니 서로 상대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선 두 책의 저자 모두 과학자들이다. 생물학, 의학...

만들어진 신에서 철저하게 존재로서의 신을 부정하고 절차로서의 신만을 인정한다.
절차의 신... 즉 몇십억년동안 누적된 진화절차가 신 이라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이미 주장 했듯이 만들어진 신의 저자는 지금의 신학, 종교를 참 우습게 만들어 버린다.

이에 반발하는 "신의 언어".
솔직히 "신의 언어"를 읽으면서 좀 구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로서 진화를 인정하는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신의 존재 근거는
"도덕률" 이다. 사람들에게 "도덕" 이라고 불리우는 감정이 생명의 근원에 신이 개입 했다는
증거라는...

그동안 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온갖 진화론에 대한 부정이 결국 과학으로, 유전공학으로 다시 부정이 된 현실에서 아직 과학이 규명하지 못한 "틈새"를 신의 존재 이유로 주장하지는 말자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종교인과 유신론자에게 부탁한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들의 의식에 존재하는 "도덕"으로 신의 존재를 주장한다.

한편 만들어진 신의 저자는
"도덕" 이란 이기적 유전자에서 설명함 문화유전자 밈(meme) 으로 설명한다.
예를 들어
지금 기차가 달려오고 있고 나는 선로의 갈림길에 서 있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기차는 오른쪽으로 가고 그 오른쪽 선로에는 4명의 사람이 쇠사슬로 묶여서 풀어줄 방법이 없다.
내가 기차의 방향을 바꾸면 기차는 왼쪽으로 갈텐데 그 왼쪽에는 1명의 사람이 귀에 아이팟을 꽂고 음악을 들으면 선로를 따라 걸어가고 있다. 그 사람은 지금 다리위를 지나고 있어서 피할 데도 없고 내가 소리를 질러도 들을 수 없다.
여기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선택하기 싫지만 결국 선로를 바꾸어 1명을 죽이고 4명을 살리는게 도덕적인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상황을 바꿔서 다른 예를 든다.
병원에 4명의 환자가 각기 다른 장기의 이상으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의사인 주인공은 자신이 그들을 살릴 수 없음에 안타까워하고 있는데 병원로비에 다리 골절로 입원한 젊고 건강한 환자가 간호사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다.
저 사람 한명 잡으면 지금 죽어가는 4명을 살릴 수 있다.
그래서 그 한명을 죽이는게 도덕적인가?
누구도 그를 도덕적이라고 정당화 해줄 수 없다.

기차길과 병원의 차이가 무엇이길래 기찻길에서는 도덕적이고 병원에서는 잔인한 살인마가 되는가?

라고 물으며 도덕이라는게 결국 유전자에, 생명에 깃들어 있는게 아니고 인류가 진화하면서 같이 진화해온 문화유전자의 진화에 따른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두 석학의 서면 대결이 재미있다.

출판 연도를 비교해 보진 않았는데
아마 이기적 유전자 -> 신의 언어 -> 만들어진 신 의 순서로 세상에 나온것 같다.

유신론과 무신론의 각각의 주장이 재미있게 주장되고 있다. 꼭 읽어 보기를 권한다.

2011년 4월 5일 화요일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 준 책 "만들어진 신"

무신론 대표자로서 종교계(특히 기독교계)의 신랄한 비판을 받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씨..

이 양반의 책을 딱 2권 읽었다.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

지금까지 종교에 대해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진 않았지만(종교 자체가 나빠서라기 보다,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온갖 부작용들 때문에...) 나 자신은 유신론자 였다.

그리고 조금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그 "신" 이라는 "존재"가 전능일지는 몰라도
전지는 아니었다는게 내 생각이었다.

그런 하찮은, 편협한 신이라도 어딘가 존재해서 내 존재의 의미를 가지고 싶었다고 해야겠다.

지금 내가 가진 자아가 시간적으로 유한한 존재라는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죽은후 몸은 썩어 없어지더라도 영혼이라고 불리는 그 자아만은 어떻게는 "나" 라는 존재감을

잃지 않고 유지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얼마전 이기적 유전자 라는 책을 읽고 한층 더 내 존재의 무력함을 인정하기 싫어서 두려워 했다.

동일한 작가가 쓴 "만들어진 신" 이라는 책을 읽고서야 내 존재의 유한함을 인정하게 되고

그 존재라는게 별거 아니라는 안도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 죽었다는 건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과 동일한 거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답답함이나 괴로움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았듯이 죽은후에도 그런 감각들은 없겠지... 고통, 두려움 이라는게 "자아"가 있기 때문일 테니...

지금도 누군지 모를 태어 났을 수도 있는 여러 존재가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

그 무존재의 편안함이 부러워진다.

존재함으로서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 세상을 얼마나 힘들게 싸워가고 있는가...

우주의 여러 질량이 아직 규명되지 않은(결국은 언젠가 규명되리라 생각한다.) 생명이라는

특이한 현상에 의해 자아를 가진 생명체로서 존재의 방법이 바뀔 뿐이다.

존재 한다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다. 죽어서도 존재한다. 질량 보존의 법칙에 의해서...

우주의 역사(137억년?)에서 13,699,999,900년 이상을 그저 물질로 존재하다가

어쩌다 운이 좋아서(또는 나빠서) 우주의 한가지 현상인 "생명" 이라는 짐을 짊어 지고

잠시 존재의 방법이 바뀌었을 뿐인 지금의 나에게 지나친 가치나 자존심을 부여하지는 말아야 겠다.

2011년 4월 4일 월요일

올날은 오고야 만다...

올날은 오고야 만다.

2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간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주변이 낯설지 않았다. 마지 어제까지의 여행이 꿈이 었던듯...

그 여행하던 그 사람은 내가 아니고 타인이듯

기억에 이물감이 느껴지며 바로 눈앞의 현실에 적응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직장생활...

그리고 다시 직장을 접고 코이카 자원봉사자로 나온 그날.

어제까지 다니던 직장의 기억이 또 다른 사람의 기억처럼 나에게 낯설어 졌다.

지금 2년간의 코이카 생활을 마무리 하고 있다.

며칠후 집에 돌아가면 이 곳에서의 기억들이 또 낯설게 느껴지겠지...

그렇게 사람들은 변태를 하는가 보다.

혼자 살다 결혼을 하면서 변태를 하고

지금까지 아들로, 딸로 살다가 자식을 낳고 나서 아버지로, 어머니로 변태를 하고

나같은 경우, 여행을하다가,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해외봉사자로서의 삶을 살며

변태를 한다.

한때 죽음이라는걸 두려워하며(한때가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몇주 전 까지니 거의 40년 가까운 기간을) 나도 언제가 이 삶을 끝내고, 이 존재를 끝내고 죽어야 한다는 사실에

우울해 하면서 죽은 이후의 일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지내려 애썼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이제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어떤 물질에서 생명을 가진 이 존재로 변태를 하며 나왔듯이,

이 존재를 마감하고 다시 죽음 이후의 물질로 변태를 하는 과정일 뿐이다.

내 선택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우주의 물질로 지내다가 어쩌다 운이 좋아

생명을 갖게 된걸 모르고 거만하게 살아왔다. 그리고 그 생명이라는걸 잃을까 두려워 했다.

그저 이 우주의 조그만 질량일 뿐이다.

결국 그 "올 날" 이라는건 내가 "존재" 이기 때문에 의미를 가질 뿐이다.

우주는 그냥 그대로다. 원래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우주라는게 어떤 "자아"를 가지고 있다면 그에게 시간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부디 그 우주에 자아 라는게 없기를 바란다.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 것인가. 그 자아를 가진 우주에게도 뭔가 올날이 올것이라는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