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4일 일요일

감염 - 로빈 쿡

 글쓴날 : 2026.01.05

감염 | 로빈 쿡 - 교보문고 

이 분도 오랜 필력을 가지신 분이다. 이 분이 쓴 책 중에 "코마" 외에 읽은 기억이 없고 지금 이 책이 두 번째 책이다. 1987년에 출판된 책이니까... 이 정도면 고전 이라고 해야 되나?

원제가 Outbreak 이던데 로빈 쿡 씨의 Outbreak이라는 동일한 원제에 "감염", "바이러스" 두 개의 번역본이 있었다. 같은 건가? 다른 건가? 

미국 몇 개 도시에 몇 달 간격으로 무시무시한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 사태가 발생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워낙 치사율이 높은 바이러스라 넓게 퍼지진 못하고 백 명 이내의 사망자를 만든 후 진압된다. 감염 통제를 맡는 CDC가 확산 억제는 성공 했는데 원인 파악에는 실패한다.

CDC의 어리버리 연구원 마리사 씨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고 나름의 추적을 하다 보니 어떤 단체가 이 테러의 배후에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되고... 추적한다. 물론 그 단체도 이 어린 연구원이 진실에 접근하는 사실을 인지 후 제거하기 위해 용 쓴다.

1월20일에서 5월24일까 약 4달의 숨 막히는 추격전이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배경인데... 배경 이야기 하고 나니 전부를 이야기 해버린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추적 스릴러 영화, 소설 등을 너무 많이 봐서 지금은 좀 식상 하더라.

지금 시대에 와서 이 책을 읽으니 식상한 것이지 만약 이 책이 출판된 28년전에 읽었다면 열광하며 읽었을 것 같다. 이야기의 구조가 그렇다는 거지 내용이 재미 없다는 말은 아니다. 안타까운 점은 내가 너무 닳고 닳아서 처음의 1월 며칠 치 읽고 바로 범인이 보이더라는... 책도 싱싱할 때 읽어야 하는 부류가 있다.

묵힌 후 먹어야 맛있는 음식과 싱싱할 때 먹어야 맛있는 음식이 있듯이 책도 마찬가지인듯하다.

기왕 싱싱할 때 못 읽어서 하는 불평을 한가지 더 해보겠다.

바로 전에 읽은 책 "숲의 신"에서 작가의 성별에 따라 책 속 등장 인물을 묘사하는데 한계가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책도 작가 분은 남자인데 주인공은 어린 아가씨 이다. 상식적으로 여자가 남자를 볼 때의 시각이 이 책 속의 주인공과는 다를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추리 소설이건, 공상 과학 소설이건, 멜로 소설이건 결국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은 책 속의 등장인물 들이다. 비정상적인 캐릭터가 아니라면 정말 그 사람이 생각할만한, 행동할만한, 평가할만한 형태로 묘사가 되는 게 맞지 않을까?

그래서 글을 쓰는 직업이 쉽지 않은가 보다.

2026년 1월 1일 목요일

숲의 신 - 리즈 무어

 글쓴날 : 2026.01.02

숲의 신 | 리즈 무어 - 교보문고 

올해 첫 포스팅이다. 작년 말에 대출 받고 반납 일자에 밀려 허겁지겁 읽었다. 이 전에 읽은 책 3권이 너무 두꺼워서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1950~1975.8 월 사이에 발생한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다.

반라 가문. 이 지역에 은행을 소유한 부유한 집안이다. 가문의 1대조께서 자연에 대한 큰 경외심을 가지고 계셔서 자연 보호 구역에 넓은 땅을 소유하고 여름 캠핑 장도 같이 운영 하는 집안이다. 우리나라의 캠핑 장 같은 곳이 아니고 전국의 꽤 먹고 사는 집안의 자식들을 받아서 숲 속에서 길 찾기, 사냥해서 생존하기, 물 구해서 마시기 등의 꽤 힘든 과정을 가르치는 캠핑 장이다. 나도 한번 가보고 싶다.

올해(1975년 8월) 이 가문의 외동딸이 캠핑 장에 합류했고 어느 날 밤 실종됐다. 온 동네 사람들, 소방서, 경찰들이 투입돼서 애 찾기 및 수사를 한다. 이때에 맞춰 과거의 연쇄 살인범이 "탈옥"도 한다. 

등장인물이 꽤 많다. 반라 집안 사람들, 이 집과 인연이 깊은 변호사 집안 사람들, 캠핑 장을 운영 관리하는 사람들, 캠핑에 참가한 엑스트라들, 캠핑 장 근처의 주민들, 수사관들...

반라 집안에는 이미 십여년전에 아들이 실종된 사건이 있었다. 그 아들도 시신도 발견되지 않는 상태로 동네 아저씨 한 분이 살해 용의자로 지목된 후 심장 마비로 돌아 가시고 그냥 그렇게 사건이 종결됐다.

등장인물들 각 각의 아름답지 않은 과거사, 우울한 사연, 현재의 상황들이 정신없이 편집되어 있다. 처음에 정 붙이기가 좀 어려운데 일단 흐름에 올라 타면 푹 빠져서 읽을 수 있다.

시간대 별로 주인공의 상황이 나오는데, 다 읽고 보니 작가 분의 필력에 감탄하게 된다. 우유부단한 사람이 주인공일 경우, 억울한 사람이 주인공일 경우, 공격적인 사람이 주인공일 경우 등의 심리 묘사와 대화가 놀라울 만큼 섬세해서 읽는 동안 울컥 하다가, 발끈 하다가, 손에 땀을 쥐기도 한다.

그리고 작가 분의 겸손함이 드러나는 것은 대부분 여성이 각 상황의 주인공 이라는 점이다. 작가 분이 여성이라 남자의 심리를 묘사할 오만을 부리지 않으셨다. 남자가 여자 심리 묘사하기 어렵듯이 여자도 남자 심리 묘사하기 어렵겠지... 탈옥한 연쇄 살인범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부분이 잠깐 있는데 이건 쫌 오바 하셨다. 이야기의 전개 상 반드시 필요한 양반이라 조금 무리 하신 듯 하다. 그리고 첫 번째 아들 살해 용의자로 나왔던 아저씨의 시각도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불만 없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옆에 메모지를 두고 이름, 성별, 역할 등을 적어 두고 읽는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적고 보니 메모지 두 페이지가 넘어 가더라.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적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내가 길을 잃어 버린다.

예전에 실종된 애는 어떻게 된 거지? 지금 사라진 딸은 어떻게 된 거지? 저 불쌍한 여자는? 저 나쁜 양아치 새끼는? 등등 조바심이 나고, 책이 끌고 가는 긴장감에 내 신경이 너덜너덜 해질 때 쯤 "유치하지 않게", "슬프지 않게", "이거야 싶게" 끝난다.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

신 - 베르나르 베르베르

 글쓴날 : 2025.12.31

신 1: 우리는 신 | 베르나르 베르베르 - 교보문고신 2: 신들의 숨결 | 베르나르 베르베르 | 열린책들 - 교보문고 구독서비스 sam신 3: 신들의 신비 | 베르나르 베르베르 - 교보문고 총 3권 1,940 페이지를 넘는 분량이다. 아무리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재미있어 해도 이렇게 긴 글을 하나의 주제로 쓰는 게 가능한가 싶다. 대단하시다.

우주의 외딴 곳에 있는 어느 행성의 "신" 학교에 총 144명의 신 후보생이 모였다. 인간으로 살 때 나름 한가닥씩 했던 사람들을 모아 두고 신의 자질, 인간을 대하는 방법, 세상을 제어하는 방법 등을 교육하며 수많은 민족 중 한개씩을 할당해서 경쟁을 시킨다. 총 12 단계의 경쟁을 거치며 각 단계마다 꼴찌하는 후보생을 탈락시키는 형태로 진행한다. 이 와중에 후보생이 살해되는 사건도 계속 발생하고...

후보생 각자의 성향에 따라 자기가 담당한 민족을 발전 시켜 나가는데 발전 과정이 지구의 역사와 비슷하게 진행된다. 신화의 내용,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삐딱한 시선등을 보며 역시 베르베르 라는 감탄을 하게된다. 얄미울 정도로 많은 내용을 공부하고, 나름의 시선으로 재 해석하고, 그럴듯 하게 포장해서 글에 담아내는 능력을 보면 역시 대단한 작가다.

세상을 점점 발전 시키고, 최상의 신인줄 알았던 제우스까지 만나는데 더 쎈넘이 있다는 사실에 좌절하다가, 그를 만나서 궁금하던것 모두 질문하겠다는 의지로 또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절대 선이 아니고, 전지전능도 아닌 신을 가정한 상태가 무척 마음에 든다. 신에 대한 절대적 존경, 복종, 원망이 주제가 아니고 신도 나름의 고민, 한계, 똥고집이 있다는 시각이 좋다.

결말은... 많이 웃겼다. 이 양반의 유머 감각이 대단을 넘어 대담 하다고 말하겠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절대적이며 상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에서 인용한 짤막한 설명 들이다.(이 책 역시 베르베르 형님이 쓰신 책이다. 읽어 봤겠지만 아직 안 읽어 봤다면 일독을 권한다.) 달달 외워두면 어디서 자랑하기 좋은 주제들이 많다. 내가 알던 신화나 역사적 사실들을 색다르게 해석한 "삐딱함"이 달콤하다. 그리고 각 후보생이 담당한 민족들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어느 나라에 해당하는지 대충 짐작이 되고, 그 치사함, 졸렬함을 맹렬하게 웃긴 상황으로 만드는 돌려까기 기술에 감탄한다.

개미, 타나토노트 두 개의 글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베르베르 작가님의 세계관에서 계속 연결되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천사들의 제국, 뇌, 키메라의 땅 등. 이미 수십년전에 개미, 타나토노트 등을 쓰실때 이런 세계관을 기획 하신거라면 어마어마한 일이지만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음 이야기를 그때 그때 기획 하셨다 해도 만만한 작업은 아니었을 것이다.

요즘 시간도 많으니 이 양반의 세계관을 다시 한번 처음부터 읽어 볼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봤는데 나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많은 책들이 남아 있어서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키메라의 땅 - 베르나르 베르베르

 글쓴날 : 2025.12.21

신작 『키메라의 땅』 발표한 베르베르, “본 적 없는 소재 꺼내는 건 소설가의 일” | 중앙일보 

베르베르씨의 글은 읽을까 말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언제나 옳다.

알리스 라는 학자분이 조만간 지구에 닥칠 대 멸종의 시대에도 인류가 생존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고민을 하신 끝에 동물과 인간의 혼종을 만들어 보시기로 한다.

두더지와 인간의 혼종으로 땅속과 지표면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디거"(D)

돌고래와 인간의 혼종으로 물속과 지표면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노틱"(N)

박쥐와 인간의 혼종으로 오염된 지표면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에어리얼"(A)

이 연구를 시작할 때 많은 윤리적 문제에 부딪히고 심지어 암살 협박까지 받게 되자 과학부 장관이 이 학자분을 우주정거장으로 보내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우주 정거장에 머무르는 동안 지상에 핵전쟁이 발생하여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지고, 이 학자분의 연구는 성공한다. 단순한 혼종이 아니라 어느 정도 방사능에 대한 내성을 가지도록 만드셨다.

배양에 성공한 배아를 데리고 지상으로 내려온 이 과학자는 살아남은 인류를 만나서 키메라 아이들 키우며 새로운 인류와 구 인류의 조화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시는데... 

인간이 보통 종족인가. 당연히 패거리가 뭉쳐서 싸우고, 죽이고, 결별하고, 번성하고 또 만나서 전쟁하고... 키메라도 결국은 인간의 DNA를 기본으로 만들어 진 종족이니 다른 넘이 나 보다 잘 사는 꼴은 못본다.

여기 까지가 이 책의 기본 배경이다. 나머지 내용은 기꺼이 읽어볼 가치가 있다.

이 글이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욕심 부리지 말고, 관용을 가지고, 같이 잘먹고 잘살아야 되지 않겠어?" 라는 계몽적 내용이 아니라 "인류는 원래 그렇고 그 마저도 자연의 일부이고, 치고 받는 과정을 거치면서 또 다른 균형이 만들어 진다." 라고 시니컬하게 바라 보시는 부분이다.

또 한가지는 다윈 선생의 "자연 선택설"에 의한 진화가 아니라 라마르크 선생의 "용불용설"도 받아 들일 수 있는 진화 가설 아닌가? 하는 질문이다. 자연 선택설에 의해서 지금 만큼의 다양한 생태계가 만들어 지기에는 지구의 역사가 너무 짧지 않나? 하는 게 내 생각이라...

이런 류의 책(내용이 아니라, 내게 주는 즐거움이 큰)을 읽다 보면 이렇게 재미있는 것도 결국 끝이 나더라는 허탈함 때문에 책의 마지막이 점점 다가오는 게 무서워 진다. 베르베르 씨 연세가 조만간 칠순이 되시는데 부디 건강하게 지내시며 더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길 바란다.

M
T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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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 - S.A.코스비

 글쓴날 : 2025.12.16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 | S. A. 코스비 - 교보문고 

이게 범죄 스릴러다. 내가 가진 어휘, 표현력으로 이 책에 대한 느낌을 설명하는데 시작부터 끝까지 "손에 땀을 쥐고 읽었다" 외에 생각 나는 게 없다.

예전 남부 연합의 일부 였던 작은 마을, 그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그들의 땅에는 "인종차별"의 악취가 남아 있다. 단지 글 속의 배경이 아니라 실제 그 나라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걸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사회 문제에 대한 의식을 가진 다는 것이 문학의 풍성함에 더 기여하는 것이겠지... 우리나라의 분단 상황 때문에 그와 관련한 다양한 작품이 나오듯이... 우울 하지만 사실이고, 슬픔과 반항이 더 좋은 문학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학교의 백인 교사를 흑인 청년이 총으로 사살 후 경찰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마을 사람들은 분노한다. 살인 사건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감히 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사실에...

이 마을의 보안관 타이터스 씨는 이 마을 역사상 첫 흑인 보안관이다. 전직 FBI 대테러팀 출신.

이 양반이 어쩌다가 이 촌 동네 보안관으로 왔는지 궁금하면 책 읽어 보시기 바란다.

보안관이 피해자와 가해자를 조사하다 보니 이들은 한 팀으로 어린이(흑인)를 납치해서 고문, 살인 하고 그 과정을 동영상으로 남겨두는 고약한 취미를 가진 새끼들 이었다. 지들끼리 치고 받고 하다가 살인이 발생 한건가? 했는데 동영상 속에 미지의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한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그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 난리 법석에 몇 명 더(목격자, 방조자 등) 죽는데 살해된 사람의 모습을 너무 자세하게 묘사 하셔서 오늘 저녁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걱정이 될 정도다.

이 와중에도 마을의 백인 꼰대들은 죽은 교사를 옹호하고, 흑인 꼰대들은 억울해 한다. 미친 것들...

세면대에 고인 물이 회오리 치면서 빨려 내려가는 것처럼 정신 없이 읽었다. 다 읽고 나니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온전히 글 솜씨 만으로 나를 "쪽" 빨아 당기셨다. 이 정도면 상 줘야 한다.

이야기의 짜임새도 탄탄하다. 고약한 취미를 가졌던 3명의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시간들, , 잠시 나마 용의자가 됐던 사람들의 그럴 듯한 배경, 경찰의 구구절절한 사연 등등. 엊그제 읽은 우중충함에 묵직해 진 심장을 겨우겨우 매달아 두고 있었는데 이 책 한 권으로 다시 힘이 날 것 같다.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어두움의 연습 - 나야 마리 아이트

 글쓴날 : 2025.12.14

어두움의 연습 | 민음사 

개인적으로는 처음 접하는 덴마크 작가의 작품이다. 덴마크 라는 곳을 예전에 두 번 여행을 해본 적이 있다. 모두 여름철 이어서 겨울의 우중충함을 느껴보진 못했지만 한여름의 태양도 지평선에 붙어서 나즈막 하게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아... 여기가 고위도 지역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겨울은 더 우중충 하겠지.... 이 책의 배경이 이런 우중충함이다. "겨울에 눈은 안 오는데 먹구름이 낮게 깔리고 얇은 바람이 선득선득 불고 있는 날씨"를 생각하며 읽으면 된다.

50 후반의 여성이 어떤 사고로 PTSD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우울했던 어린 시절(아버지가 상습적으로 두드려 패던 집안), 막 살던 20대, 엄마가 된 후 세 아들은 이미 독립을 했고, 남편과는 이혼해서 혼자 살고 있다.(돈도 없다. 끊임 없이 아르바이트 라도 해야 겨우 먹고 산다) 거기다 막내 아들은 세상 다 산 것처럼 허무주의에 빠져 막 살고 있다. 이 와중에 어떤 사고로 인한 트라우마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불안하다. 새로 산 하얀 운동화를 신고 눈이 끈적하게 녹은 길을 걷고 있는 불편함이 느껴졌다.

여자라서 겪는 아픔을 이야기 한다. 나는 여자로서의 삶도, 엄마로서의 삶도, 아내로서의 삶도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저자가 말하고 싶은 아픔이 무엇인지 모르는데도 같이 아파진다.

축축한 담요로 몸을 두르고 진흙 바닥 위에 앉아 있는 느낌. 그런데 춥지는 않다. 겨우겨우 살아가는 상황에서도 주변의 친구들이 가끔 씩 햇살을 비춰주고, 손주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 준다.

책 뒷면의 짧은 소개글을 읽으면서 많이 고민했다. 이걸 대출 받아? 말아? 재미 없으면 어쩌지? 등등...

그런 걱정은 다 잊어 버리고 한방에 다 읽어 버렸다. 번역을 잘 하신 건가? 긴 시를 한편 읽은 것 같이 가슴속을 툭 치고 지나가는 묵직한 통증이 있다. 아프지 않은 통증.

유치 하지 않고, 제발 그렇게 되기를 바라던 마무리로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살아 가면서 고통이 없어지지는 않고 줄어들기만 해도 살만 하다고 느끼는 것 같은 작은 위로들.

어릴 때 읽었다면 못 읽어낼 책 이다. 나이 먹다 보니 이 나이에는 읽어 보고 싶지 않은 책들도 생기지만 이렇게 이 나이가 되어야 읽어 볼 수 있는 책도 생긴다. 여자가 아니라서, 엄마가 아니라서(아빠도 아니라서) 충분한 공감을 하진 못했지만 곧 60을 바라보는 "사람" 으로서 심하게 공감하며 읽었다. 누구든 읽어 보시겠다면 강력 추천한다.

2025년 12월 8일 월요일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글쓴날 : 2025.12.09

폭풍의 언덕 | 에밀리 브론테 | 문예출판사 - 예스24 

국민학교 다닐 때 던가? 부모님이 사주신 어린이 동화 100권짜리 전집 중의 한 권인 폭풍의 언덕을 읽었었다. 워낙 예전에 읽은 책이라 내용은 당연히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전율", "짜릿" 했던 느낌만이 남아 있다.

이 오래된 책을 최근에 다시 출판해서 도서관 신착도서 코너에 꽂혀 있길래 "고전이면 한번 쯤 더 읽어 줘야지" 하는 마음으로 대출 받았다.

물론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은 어린이 용으로 적절한 각색을 해서 출판을 하셨을 거다.

이 책이 꽤 유명한 여러 대학(국내, 국외 포함)에서 권장도서 목록에 올라 있다고 하던데... 

나이 들어 다시 읽은 이 책은 누군가에게, 특히 어린이에게 읽어 보라고 전혀 권장하고 싶지 않다.

3대에 걸친 로맨스, 복수 이야기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서늘한 살기라도 읽혔는데 이 책의 등장 인물들은 세상 찌질이들만 모아 놓은 듯 하다.

최소한 어린이한테 읽히려면 "아름다운 세상", "불굴의 의지", "권선징악" 등의 내용이어야 하지 않을까? "비열한", "추잡한", "더러운" 사람들의 세상을 보여 준다. 누구신지 모르겠는데 이런 걸 어린이한테 읽히려고 하신 분...  마음 그렇게 쓰시면 안된다. 각색을 잘 하셔서 내가 착하게 살았지 만약 이 내용 그대로 그 어린 나이에 읽었다면 꽤 오랫동안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거다.

어떻게 하나같이 두 집안의 할아버지, 아들.딸, 손주들이 치명적일 정도로 이기적에 밉상일 수 있을까... 이 책이 쓰였던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그랬나? 그렇게 미워하다가 말 한마디에 사랑으로 바꾸고 또 죽을 만큼 미워하고... 거기다 막장 이다. 막장은 그런대로 참아 줄 수 있다. 그래야 드라마지...

등장 인물 중 하나 정도는 이기적이고 밉상일 수 있다. 그런데 하나 같이 이기적이고 밉상이고, 서로 치고 받고 음모를 꾸미고, 거기에 당하고, 또 복수하고 난리를 치는데 하나도 안타깝지 않다. 거기다 "사람이 저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멍청하다고 해야 하나?

모든 사람이 대를 이어 진흙탕을 뒹굴다가 마지막에 그나마 쬐금 해피 엔딩인 척 하는데 이것도 읽다 보면 두피 속의 머리 뼈까지 닭살이 돋을 것 같은 느낌이다. 세상 유치한...

그런데 재미는 있다. 드라마의 최고봉은 막장이라는 말이 맞다. 이 동네를 방문한 록우드 씨를 도와주는 "넬라 딘" 이라는 아주머니가 두 집안을 오가면 관찰한 예전 이야기를 아주 찰지게 며칠에 걸쳐 풀어 내신다. 아마 작가인 에밀리 브론테 씨 자신을 이렇게 등장 시키신 듯.

영국이 배경인데 이 쪽 문화는 애 이름을 엄마나 아빠 이름으로 따라 짓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듯 하다. 저 양반 쫌전에 돌아 가셨는데 갑자기 또 등장 하시면 살짝 현기증이 날 때도 있지만 이야기의 라인이 직선적이라 두 집안의 사람들 관계만 파악되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에밀리 브론테 씨가 너무 젊은 시절에 이 책을 쓰셨고, 좀 더 무르익도록 다듬기 전에 요절 하시는 바람에 이 모양이 된듯하다. 이 분이 훌륭한 작가 이신지 모르겠으나 조금 있으면 나이 60인 내가 29살 아가씨가 쓴 글에 무조건적인 존경과 찬사를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무슨 비평을 받기도 전에 이 책 출판하고 그 다음 해에 폐병으로 돌아 가셨다.

겁나 퇴폐적인 막장 드라마를 즐긴다면 동화 버전 말고 이 번에 출판된 책을 읽어도 좋다. 퇴폐적 이라는게 무슨 얼레리 꼴레리 하다는 뜻 아니다. 그냥 세상 유치한 공명심, 이기심, 복수심 같은 걸 퇴폐적 이라고 표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