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 2025.10.04
1954년에 출판된 책이다. SF소설이긴 한데 첨단 기술이나 상상도 못한 통신 방식이나 거대 괴수같은게 등장하지 않고 모험, 위기 같은 것도 없다.
이미 우리는 스피릿, 오퍼튜니티, 큐리오시티, 퍼서비어런스등 여러대의 화성탐사 로버를 보내서 화성의 환경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구글 마스에서 화성 표면 사진도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며 이런 사실들을 전제로 깔고 보는건... 싸우자는 이야기다. 좀 겸손해지자.
물론 이 이야기를 쓰실 당시에도 화성이라는 곳이 인간에게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행성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산소도 없고, 기압도 낮고, 춥고 등등. 그리고 작가분도 그 사실을 잘 알고 계셨다.
하지만 작가분은 이런 제약조건 다 무시해 버리시고 신대륙 발견후 정착하고자 도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셨다. 제목이 화성이지 그냥 척박한, 그런데 꽤 넓은 무인도을 어떻게 해보자고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봐도 별로 이상하지 않다.
몽환적이라고 해야 하나?
1999년부터 2026년까지 화성에 정착하고자 그곳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것 저것 들어있다.(작가분은 이때쯤이면 인류가 화성에 갈수 있을거라고 기대 하신듯 하다.) 짤막한 여러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 장의 이야기에 연결성 같은건 거의 없다시피 느슨 하지만 신 개척치 특유의 활기, 긴장, 배경지명(가장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파란언덕이다) 등은 일관되게 유지된다.
초기 원정대 몇개가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결국 정착에 성공하고, 대신 화성에 원래 살고 있던 원주민들(화성인)은 지구인이 옮겨준 전염병으로 대부분 죽어버린다. 지저분한 스페인 애들이 남미 원주민을 몽땅 학살한 상황과 비슷하다.
배경이 화성이다 보니 지구에서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상황을 마주하는 경우도 있고, 살아 남은 화성인을 개종 하겠다고 찾아간 신부가 거꾸로 그들에게 교화되어 화성인을 신으로 믿게되는 경우도 있고, 지구의 생활에 찌들어서 화성으로 도피한 사람, 핵전쟁의 공포 때문에 화성으로 피난한 사람 등등...
어떤 장은 시를 읽는 듯 몽환적이고, 또 어떤 장은 다큐를 보는듯 사실적이고, 또 다른 장은 구구절절한 사연에 서럽기도 하고, 저런 이기적이고 꽉막힌 것들이 왜 화성까지 가서 저 지랄일까 하면서 분노도 하고 밑도 끝도 없이 이건 무슨 이야기지? 하면서 궁금해도 한다. 즐겁고, 힘차고, 성취해 내는 이야기는 한편도 없다.
어떤 장이든 앞.뒤 다 잘라내고 현재 그곳에서 격는 일만 쓰여진 글을 읽다보면 그들이 여기 오기전 지구에서 이런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저절로 하게된다. 내가 소설을 같이 쓰는 기분.
한장 한장이 살을 잘 붙이면 영화 한편씩 나올법한 스케일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대장금" 이라는 이름 딱 세번 나왔는데 그걸로 36부작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극작가 들이다. 존경한다.
화성연대기 한챕터면... 2시간짜리 영화 한편씩 만들어 낼수 있을 것 같다.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풀어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결말이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 그저... 해피엔딩은 아니다. 그렇다고 새드엔딩도 아니다. 또 다른 연대기가 시작할 것같은 엔딩 이었다... 정도로만 말하겠다.
재미있냐 물어보면 재미있다고 답하겠다. 그리고 꼭 한번 읽어볼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