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의 성함이 "나나 크와네 아제 - 브레냐" 이기에 두명의 공저인가? 했다. 한명이더라. 필명인지 본명인지 모르겠으나 이름에 대쉬 표시 들어가는게 불법은 아니니...
장기수 또는 사형수중에 지원자를 모아서 3년을 버티면 사면, 면책, 석방 시키는 조건으로 데스매치를 벌이는 깜찍한 미래의 이야기다.
그저 그런 액션 소설...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며 즐겼다.
크게 4개의 팀이 나온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있는 팀, 나중에 이들과 적수가 되는 두개의 팀, 이런 데스매치를 반대하는 시위를 하는 팀(이들은 죄수가 아니라 그냥 인도주의적 민간인이다.)
거기에 이 매치를 이용해서 큰 돈을 벌고 있는듯한 양아치 회사와 정부.
죄수로 구성된 3개의 팀에 마지막 매치까지 도달하는 과정과 각 팀 알파들의 과거사(?)로 구성된 이야기다. 데스매치를 반대하는 팀에서 모의하는 뭔가 큰 반전을 기대했는데 그들은 그냥 그러다가 끝나더라.
실망 했다고 하기엔 내가 너무 거만한거 아닐까? 해서 책의 말미에 작가가 써두신 "감사의 말"을 꼼꼼히 읽어보니 한국 사람은 들어서만 알뿐 실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미국 이라는 나라의 어두운 면"에 대한 고자질인듯 하다. 흑인은 범죄자라는 편견. 흑인 범죄자 따위 그러다가 죽든지 말든지 크게 개의치 않는 사회 분위기를 고발했다. "그러지 말자, 다르게 해보자" 같은 하나마나한 소리는 없다. 그래서 더 품위있고 당당해 보인다.
그래도 시위를 주도하던 사람들... 너무 허무했다.(죽은 사람은 없다.) 그냥 큰소리 몇번 지르고 말았다. 그들중의 일부 과거도 상당히 긴 지면을 할애해서 소개 했는데 정작 이룬게 없다.
그리고 읽기 어려운 문장이 꽤 자주 나왔다. 말랑말랑한 주제라 쉽게 읽힐줄 알았는데 난해한 문장 만나면... 주어가 너~~~~무 길어서 한국어로 쓰인 책임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가 주어구나" 라고 분석해 가며 읽어야 했다. 예전엔 이런 글도 잘 읽었던것 같은데 나이 들다보니... 슬프다.
등장 인물들의 개인적인 감정 표현, 서로간의 관계 설명, 전투 행동등에 대한 묘사가 "윌리를 찾아라" 한페이지를 보는것 만큼이나 자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별거 아닌 이야기라고 생각 하면서도 주인공이 벌일 마지막 매치를 기대하면서 읽는데 숨이 찰 정도다. 헬스장 러닝 머신에서 뛰는 기분으로 읽게된다.
의학의 발달로 사람의 수명이 연장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인생의 마지막 수년을 침대에 누워 보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격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나도 아직 환자가 되어 본적은 없고 가족으로서 지켜본 과정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아직도 선득선득 꿈을 꾸곤 한다. 그런 날은 아침부터 아득해 지는 우울함에 빠진다.
죽음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 않는게 사실이다. 자식으로서 차마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 어렵다는것은 누구라도 공감해 주리라 생각한다.
이 글을 쓰신분의 어머니는 "소뇌실조증" 이라는 유전병 발현후 재활로 몇년 더 건강하게 사시다가 병세가 악화되자 스스로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시고 자식들은 그 과정에 동의를 했고,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마지막 몇달을 더 애뜻하게 보낼수 있었다.
내가 부모님을 떠나보낸 방법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를 읽으며 계속 생각나는 나의 그 마지막 몇달 때문에 도서관에 앉아있기 민망할 정도로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라.
이 책을 예전에 읽었다해도 내가 나서서 이런 이야기를 할 용기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 드릴때의 경험을 어머니도 하셨기에 연명치료를 거부하신다는 의사를 밝혀 두셔서 고통의 시간이 조금이라도 줄었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아들의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어려운 선택. 나도 결국 언젠가 맞이할 "판정"을 들은 후 이런 선택을 할수 있을까? 지금도 평소에 항상 죽음을 대비하며 "담담하게" 받아 들이고 연명치료 같은건 받지 않겠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세뇌하고 있지만 막상 닥치면 어찌될지 모르겠다. 어쨋든 지금 하루 하루를 오롯이 나를 위해 나의 시간을 쓰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자 노력하고는 있다.
우리 세대는 이미 부모님이 연로하시고 각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겠지만 정작 "죽음"을 준비 하시라고 말씀 드리기 어렵다. 이번생은 망했으니 최소한 우리 자식 세대는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내가 원하는 "죽음"을 같이 공유해 두는게 좋을 것 같다. 우리 자식도 차마 우리한테 "죽음" 이라는 주제를 입밖에 내기 어렵다. 내가 이야기 해줘야된다.
한 세상 살면서 떠나 보내는, 또는 내가 떠나는 경험을 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래서 실수를 통해 배울 기회도 많지 않고, 어떤 선택을 하든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도 어렵다. 내가 갈때야 후회고 뭐고 없겠지만 떠나 보내는 입장에서는 어떤게 맞는 건지 선택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존엄사" 라는 제도가 만들어 질지 모르겠으나 만들어 진다고 한들 "내가 떠날땐" 자신있게 그걸 선택하리라 생각 하지만 "나를 떠나 보낼때" 자식들이 그러시라고 할 수 있을까?
결혼해서 자식이 있는 분들은 꼭... 늦기전에 자식들과 합의해 두기 바란다. 그들이 우리를 후회없이, 고통없이 보내 줄 수 있도록...
위의 그림에서 보는 것 처럼 원제는 "THE MODERN BESTIARY" 이다. "현대우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왜 "나를 닯은" 이라는 표현을 쓰셨는지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공감이 되질 않는다.
나같은면 "너를 닮은" 또는 "그 새끼를 닮은" 같은 표현을 사용하겠다.
제목이야 어찌되었건 "인간"의 관점에서 볼때 "기괴한" 동물의 행동에 대해 이것 저것 쓰셨다.
어릴때 어린이 잡지등을 통해서 소개되던 재미있는 동물의 소개 같은 건전한 내용은 아니다. 재미있게, 부담없이 읽을 수는 있지만 "아이"들은 읽지 못하게 말려야 한다. 애들 이책 보면 울거나 토할 수도 있다. 부디 어른들만 읽어보기 바란다.
암기력이 된다면 이 책에 나온 모든 동물들의 특징을 다 외워 버리고 싶다.
살면서 그런 넘들을 심심찮게 마주하는 경우가 있고, 그럴때 아주 재미있게 써먹을수 있을 것 같다.
기왕 써먹을거... 동물 이름이라도 재대로 인용해야지 "그딴짓 하는 동물이 있대" 수준의 인용은 부족하다.
식량이 부족하면 자신을 기꺼이 새끼들의 먹이로 내주는 엄마가 있는가 하면, 새끼를 잡아 먹는 엄마도 있고
기껏 만나서 힘들게 자식의 생산을 위한 일을 마치고, 남자 친구의 거시기를 홀랑 뜯어 먹어 버리는 무서운 여친들도 있다.
작가님의 의도는 신기하거나 재미있는 동물 소개가 아니다. 그들은 그렇게 태어나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뿐이고 항상 강조하는 내용은 "그런데 이미 90% 이상이 사라지고 있다. 다~~~~ 인간 때문이다." 는 안타까움이다. 어떤 종은 그 종의 보호를 위해 생태를 연구할 만큼의 개체도 남아있지 않다. 이 넓은 지구에서 250마리 남은 조약돌 만한 새를 어떻게 찾아서 연구를 하나...
저 동물들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게걸스레 세상을 소모해 버리는 인간들이 더 이상한 것들 일 것이다.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지구에 욕심꾸러기 인간들이 너무 많다.
어찌 보면 참 비극적인 이야기를 나름의 유머 감각을 발휘 하셔서 씁쓸한 웃음을 짓게 만드신다.
도서관에 이전의 9권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굳이 찾아서 읽어보고 싶어지는 재미를 주었다. (도서 검색을 해보았는데 여긴 없더라.)
20세기 초(1907)에 태어나셔서 1988년에 돌아가셨다.
이 분이 생존해 계시던 시대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도 각각의 소재들이 "상큼" 했다. 굳이 그 시대를 고려해 관용을 베푸는 수고를 하지 않고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짜릿한 모험도 아니고, 숨죽이게 만드는 스릴러도 아니고, 서늘한 공포도 아니다. 큰 자극을 주지 않으면서 질리지 않고 맛나게 계속 먹을 수 있는 담백한 뻥튀기 같은 느낌. 소설 이라는게 "일반적", "일상적"인 이야기를 써두진 않는다. 그런 일상적 이야기를 찾아 읽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이 분의 글은 그런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의 이야기를(시간여행, 외계탐사, 초능력자 등) "일상적"인 말투로 풀어 놓으신다. 홀린듯이 읽게된다.
작가분이 일관성을 가진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한편씩 쓰신게 아니라 여러 해에 걸쳐 발표 되었던 이야기들 모아둔 책이다 보니 각 편의 주제가 당연히 아무런 관련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전 편의 여운이 남아서 지금 읽는 이야기에 몰입하는데 시간이 필요 하더라.
다행히 단편중에 긴(10페이지 내외) 글을 읽을때는 절반이 가기전에 이전 편의 여운이 가시고 지금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법을 찾게 되는데 짧은(2,3페이지) 글은 이전 편이 남긴 물결에 휩쓸려서 자유낙하 중인 롤러코스터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든다. 책이 잘못된게 아니고 내가 잘못 읽고 있는 것이겠지.
한편을 읽고 하루쯤 쉰후 다음편을 읽어야 그런 간섭 없이 책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일독을 하고 보니 좀 오랜 시간을 두고 읽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도서관에 있던 사피엔스의 죽음, 사피엔스의 의식을 읽고 나니 이분들의 연작중 첫번째인 "루시의 발자국"이 궁금해 졌다. 혹시나 해서 도서관 홈페이지의 "도서신청" 메뉴에 신청을 했는데 한달도 안돼서 책이 들어왔다. 대한민국 훌륭한 나라다. 책을 읽고 보니 아... 이 시리즈는 이 책부터 읽었어야 하는구나... 라는 아쉬움이 생기더라. 그래도 어쩌냐 이미 2, 3번 을 읽어 버렸는데...(그것도 3번부터 거꾸로...) 아직 안 읽어본 사람들은 루시의 발자국부터 읽어 보길 권한다. 지식의 습득 순서는 중요하지 않고 두분의 관계 변화 과정을 즐기게 된다.(동성애 같은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라.)
미야스 할아버지가 아르수아가 교수를 잠시 만난 후 반해서 그와 함께 책을 써보기로 결심한 대목부터 시작된다. 처음엔 아 르수아가 교수가 더 까칠했고, 미야스 할아버지도 만만찮게 개구지셨다. 첫번째 책을 쓰신 이후부터 조금씩 서로 맞춰가신 듯 한다.
책의 전체적은 내용은 진화에 관한 것이다. 진화는 "인위적" 선택이나 창조가 아니라 "많은 우연의" 결과라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모여 살다보니 강이 만들어 진게 아니고 거기에 강이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모여든 것이다. 강이 없는 곳에 살던 사 람들은 모두 떠나거나 멸종했고 우연히 강 옆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살아 남듯이.
도킨스씨 처럼 "이 멍청한 것들아 진화가 맞단 말이다." 라고 꾸짖는게 아니고 아이들을 달래듯이 "네가 사탕을 좋아하는 이유는 조상의 뇌가 우연히 커지다 보니 큰 뇌를 위해서 열량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커진 뇌 때문에 사회성 이 발달했고 그래서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져서 네가 태어날수 있었다." 라고 조근조근 설명을 한다. 이 설명을 들은 아이는 존재의 하찮음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울게 되지 않을까? 잔인하지만 어쩔수 없다. 그 녀석도 나이들면 나처림 되겠지.
전체적으로 우리가 다 아는 이야기 인데(특히 대한민국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 정말 공부 많이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지식 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준다. 창조론다들 다 덤벼라 내가 상대해 주겠다. 는 근자감도 생기고...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즐거움은 까칠한 아루스아가 교수의 말을 미야스 할아버지의 유머와 감성을 섞어서 재미있게 쓰셨다는 것이다.
또 읽다보면 갑자기 잡생각이 끼어들어서 유체이탈 현상이 나타나며 기계적으로 몇페이지를 읽어버리는 일이 가끔 발생하는 데(이런 경우 뭘 읽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글의 흡인력이 좋아서 바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래서 내가 더 유식해 지는 것 같은 뿌듯함. 가끔 라마르키즘으로 진화를 설명하는 분들이 계신데(나도 가끔 그랬는데) 진화는 의지에 의해 발생하는게 아니고 우연의 결과라는 차분한 설명. (라마르키즘이란 기린이 높은 나무의 잎을 먹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목이 길어졌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진화론이다. 예전에 우리 담임 선생님도 나한테 이렇게 설명해 주신 기억 이난다. 무책임한 양반...) 이 책 읽으면 이런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미야스 할아버지의 감성적인 표현들이 가슴에 푹 박힌다. 기분이 안좋거나 우울할때는 "마치 수의 처럼 지면을 감싼 안개속을 걷는 듯한", "타이탄의 식도로 넘어가는 음식 덩어리 처럼 동굴을 지나가는 우리" 같은 표현을 하시고, 기분이 좋 을때는 "상쾌한 아침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는 아편가루를 끌어와 삶의 고통을 일순간에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같은 말씀 을 하신다. 이런 표현들 읽으면 내가 책 속으로 녹아 들어가는듯 하다. 이런 표현을 하나씩 찾아내는 것도 책 읽는 재미중 의 하나다. 나중에 써먹어야지 하면서 메모도 해두고...
가장 눈이 반짝 하면서 읽었던 부분은 사회성을 가진 뇌로 인류가 진화를 했기 때문에 사람의 세상이 지금과 같은 국가, 종 교, 시장등을 가질수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아... 지금 세상의 주요 종교들이 이런 형태를 가진 이유도 진화론 으로 설명이 가능하구나... 하는 깨달음? 구체적인 이유가 궁금하면 읽어 보길 바란다.
세권의 책 1. 루시의 발자국 2. 사피엔스의 죽음 3. 사피엔스의 의식 강력 추천한다. 이번해는 이 책 세권이면 양심의 가책 없이 "나 쫌 읽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