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3일 토요일

헌책 식당 - 하라다 히카

 글쓴날 : 2025.09.14

헌책 식당 | 하라다 히카 - 교보문고 

오랜만에 일본작가가 쓴 글을 읽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인간계의 책을 읽었다. 여태 우주 공간에서 전투하다가 잠시 휴가나온 기분으로, 표지가 이뻐서 고른 책이다.

헌책방을 운영하시던 할아버지가 돌아 가신후

할아버지의 여동생이 가게를 물려 받아 영업을 하고, 할아버지 생전부터 자주 찾아오던 문학전공의 조카손녀가 짬짬이 고모 할머니를 도와드리고 있다.

총 6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고, 각 에피소드마다 별거아닌 시시콜콜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모르는 사람들도 아니고 그냥 주변의 식당주인, 출판사 직원, 다른 헌책방의 사장, 고모 할머니 친구, 조카 손녀의 대학교수등) 찾아오고 그들의 이야기를 한다. 한번은 할머니의 1인칭 관찰 시점으로, 또 한번은 조카손녀의 1인칭 관찰 시점으로...

그리고 하나의 에피소드는 그 사연에 도움이 될만한 "헌"책이 추천되고, 주변 식당, 카페의 "음식"이 나온다.

나같은 유물론자의 시각으로 볼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큰 의미없는 이야기들.

아들한테 미안했다, 선생님한테 미안했다, 친구가 그립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등 별거아닌 잡담들이다. 그런데 나 같은 유물론자를 홀리고, 울리고, 아침에 받아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망각하게 만든다. 정신 차리고 보니 차갑게 식어버린 커피를 마셨다. 글 참 잘 쓰신다.

새책 서점이었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누어지는 자리를 만들기 어렵지 않았을까?

전자책은 더더욱 어림도 없을 것이고...

그래서 나는 나무한테 좀 미안 하지만 모든 책을 전자화 하는건 반대한다. 

결국 사람은 사람을 만날때 편안, 불편, 시기, 질투, 행복, 만족등 "감정"을 가질 수 있게된다. 그리고 아직 싱싱한 새책 보다는 누군가의 손이 탄, 구하기 어려워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헌책 이기에 사람간의 교감이 더 많이 일어날 것 같다.

물론 내가 책을 구입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빌려 보는 이유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과 다르다. 난 유물론자니까...(짐 늘어 나는거 싫고, 무겁고...)

친구들과 수다를 털고 있는데 나를 가르치려는, 나를 이기려는, 나에게서 뭔가 얻어 내려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는 금방 피곤해진다. 반면에 서로간에 아무 이해가 없는 이야기, 예를 들어 어제 본 영화, 어제 읽은 책, 언제가 가본 몽골 사막에서 만난 꼬마, 아프리카에서 나를 도와주신 현지인 할아버지, 외국에서 일할때 만나면 즐거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누군가 들려주면 행복하게, 편안하게 시간이 흘러 간다.

그런 느낌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읽을땐 살짝 눈물도 글썽 했다.

나. 비록 유물론자 이지만 이런 책 읽으면서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정도의 감정은 가진 사람이고 내가 감정을 가졌다는 걸 다시한번 확인 시켜준 이 책이 고맙다.

일본을 한번도 가본적은 없지만 이 책의 서점이 있다는 "진보초" 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가... 접었다. 일본어 1도 모르는 사람이 가봤자 아무리 책이 좋다해도 한글자도 못읽을 거라... 그냥 먹는거만 엄청 찾아 다니다 올것 같아서... 불행인지 다행인지 식탐이 별로 없다.

책 이라는 매체는 그냥 물질 이전에 "생명"을 가지고 있던 "식물"의 시체이다. 한때 살아 있던 생명에 대한 존중을 담아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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