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날 : 2025.09.22
고전이다. 토마스 만 선생이 1875~1955년까지 생존하신 기간중에 펴내신 글이니 고전이라 칭해도 될것 같다.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지만 글이 무척 끈적 거린다. 거리에서 본 어떤 사람의 인상, 느낌 등을 설명하는데 한페이지 내지 두페이지를 사용하고 지금 보고 있는 해변의 인상을 설명하는데 세페이지 분량을 사용하고... 등등 이렇다. 술취한 아저씨가 앞에 앉아서 한말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갑자기 주제 바꿔서 또하고 또하고 또하고... 이 주제로 왜 넘어갔지? 언제 넘어갔지? 같이 술취한 나는 쫓아가기 바쁘다. 그냥 끈적한게 아니라 근쩍한 술 느낌? 읽다보면 나도 같이 취한다.
주인공은 현재 독일의 유명한 시인(토마스 만 선생은 아니다.)
50을 훌쩍 넘긴 이분이 긴 세월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시다가 "이제 나도 여행 한번 갈수 있는거 아냐?" 하는 일탈의 충동을 느끼자 마자 후다다닥 챙겨서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여행을 가셨다.
주인공 소개부터 여행충동을 느끼고 실제 베니스에 도착할때 까지가 책의 절반을 넘었다.(절대 후다닥은 아닌듯 하지만 시간상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기대와 달리 날씨도 우중충 하고 호텔에 투숙중인 손님들 웅성웅성 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고... 해서 떠나려고 하다가 폴란드에서 온 가족의 막내 아들인 듯한 미소년을 발견한다. 애가 이뻣나 보다. 식당에서 밥을 먹을때, 해번에서 비치의자에 앉아서 바다를 바랄볼때 모두 이 소년을 관찰하며 시간을 보낸다. 애가 엄마와 누나들에게 질질끌려서 다시 호텔로 돌아가기 전까지 그 소년에게만 집중한다. 가서 머리라도 쓰다듬고 싶고, 말이라도 한번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해 가며 그냥 바라만 본다. 겨드랑이에 털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열살 언저일 일 것이라는 추측도 하시고(자세히도 보셨다.)...
이러다가 "아 내가 쟤를 사랑하는 구나" 라는 자각이 오고 더 더욱 그 소년에게 집착하면서도 가까이 가질 못한다. 소아 성애자 였던것 같다. 어쩌냐 그렇게 태어나신걸... 이 양반 인성을 비판할 생각은 없다.
하여간 자신이 그 소년을 사랑함을 깨달은 후 오는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그 폴란드 가족이 떠나기 전까지 자신도 그 호텔을 떠나지 못한다.
이 시기에 베니스에 "콜레라"가 유행하며 사람들이 죽고, 여행자들이 떠나는 뒤숭숭한 분위기가 찾아 오는데 이 양반은 그래도 그 소년에 대한 미련을 접지 못하고 계속 근처를 떠돌며 베니스에 머무르셨다.
이러다가 망하셨다. 콜레라에 감염되고 폴란드 가족이 떠나는날 오후에 해변에서 돌아 가신다.
이걸로 끝.
공부를 많이한 우리의 상식으로 볼때 콜레라에 걸리면 하루종일 설사에 구토에... 모양 빠지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주인공의 그런 모습은 하나도 안보였다. 그냥 며칠을 불편해 하며 해변에서 휴식을 취하며 시름시름 앓다가 가셨다. 현대 소설이었다면 이런 부분도 꽤 그로테스트하게 묘사했을텐데 토마스 만 선생이 이 작가의 마지막 품위는 지켜주고 싶으셨나보다. 아니면 콜레라의 증상을 모르셨거나...
옮긴이의 후기를 읽어보니 온갖 심리학자(융, 프로이트 등)의 이론을 들먹이며 주인공의 행위를 통한 작가주의 비판이네.. 하시는데 소설하나 읽자고 심리학을 먼저 공부하긴 좀 억울하다.
이 독후감의 앞에서도 말했지만 글이 달콤하게 끈적거린다.(취기도 쫌 오고) 그냥 이 글 자체를 즐기기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독후감을 쓸때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이 책은 이야기가 너무 단순해서(책도 얇다. 학생때 많이 보던 사다리문고 시리즈 정도)...
이 글은 내용을 읽는게 아니다. 글 자체를 즐겨라. 그림을 볼때 물감의 종류, 캔버스의 가격, 그림을 그릴 당시 그 도시 인구의 GDP 같은것이 중요하지 않듯이 좋은 그림을 보는 자세로 글을 즐기면 된다.
토마스 만 선생의 다른 글도 찾아 읽어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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